인용(引用)
Chapter 2_Created with AI
피해자의 방은 깔끔했다. 연한 하늘색 벽지, 파스텔톤 머그잔, 가지런한 침대보. 하지만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단서는 명확했다. 피해자는 방에 들어갔고,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살해당했다. 문제는 그사이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고, 복도의 CCTV도 이상이 없었다. 범인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엉성했다. 문 앞까지 이어진 희미한 발자국, 손때가 묻은 벽 한쪽, 그리고 지나치게 정리된 책상 위. 이건 계획된 범죄 같으면서도 즉흥적인 면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고 1시간 뒤에 살해당한 셈이죠." 현장 감식반이 남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게, 증언이 있거든요. 피해자가 체크인하기 전, 화재 감지기 점검 때문에 소방 점검원이 복도에 와 있었어요.
11월 12일 오후 2:15. 점검에 시간이 걸려서, 점검원들은 약 3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11월 12일 오후 5:20. 그 사이 705호에 들어간 건 피해자뿐이었어요. 즉, 살해당한 오후 4시에 최소한 복도에서 범인이 침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래도 피해자와 범인이 마신 커피 종이컵이 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어요” 나는 한숨을 쉬며 벽에 기대섰다. “종이컵에 남은 지문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안타깝지만 꼼꼼히 닦아냈더군요. 피해자가 마셨던 커피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어요. 범인은 피해자가 잠든 틈을 타 교살한 것 같아요” 그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 위, 피해자가 마셨던 반쯤 비운 커피 컵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숨을 만한 장소는 없었다. 붙박이창은 두껍고 열리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사건. 눈앞에 놓인 상황은 설계도 없이 조립된 수수께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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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것이 시간 안에 배열되어 있고, 인물들은 증언을 통해 위치와 역할이 정해진다. 그 틀 안에서 독자는 이 배치된 조각들 속에서 인과관계를 찾고, 단서를 해석하며,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려 애쓴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이제 단순히 범죄소설이나 추리극의 서사 장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졌고, 거기에 더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덧붙이거나 뺄 자유까지 주어졌다. 이는 더 이상 허구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인식구조, 다시 말해 현실을 사고하는 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치 모든 퍼즐 조각이 본래부터 정해진 자리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점차 그 전모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그들의 믿음을 토대로 말이다. 시대는 변했다. 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할 수 없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도 조각나 있으며, 그 조각들조차 서로를 반사하며 무한히 증식한다. 마치 거울 속의 거울처럼, 오늘의 사건은 어제의 맥락을 지우고, 내일의 가능성을 과잉으로 펼쳐 보인다. 일관성 없이 연결되고, 원인 없이 발생하며, 동(東) 서(西)남(南) 북(北)으로 흐르는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동시에 정작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의미는 사라진 시공간 속에서, 그들의 감각은 재조정된다. 익숙한 것에는 무관심해지고, 낯설고 불편한 것,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이제는 새로운 ‘일상’의 얼굴로 다가온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대답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그들은, 매일 낯설고 이상한 수많은 사건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다만, 이런 세계에서 비록 모든 것이 '없다'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더라도, 바라건대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 '없음' 자체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건이란 단지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진실이 때로는 말하지 않은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 누군가의 말로 구성된 진술, 편집된 영상, 정제된 기록 사이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백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진실을 상상하게 된다. 그 상상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때로는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 일에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공백은 종종 불편하다. 공백은 그들에게 결론을 유보하게 만들고, 명확함 대신 모호한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그들은 때때로 그 공백을 서둘러 지워버리려 한다. 끝이 정해진 확실한 서사만을 요구하고, 명확한 해석만을 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은 그 확실함의 이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진실은 가장 소란스럽지 않은 곳, 어쩌면 그들이 불길하다고 여겼던 침묵 속에서, 다른 것과 혼합될 수 없는 고유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이야기는 단순히 범죄소설이나 추리극의 서사 장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증거가 범인의 부재를 증명할 때야말로 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결코 이야기의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로는 가장 정연한 설명이 가장 정교하게 꾸며진 함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